산(Mountain, 山)

동두천 소요산. 탕방안내센터를 들머리로 먹쟁이골 코스로 백운대에 올라 칼바위 능선으로 산행하여 의상대에 올라 북으로 백운대와 서로 감악산 조망하고 주차장으로

산이 좋아 ^_^ 2020. 10. 18. 22:13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소요산, 규모는 작으나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등 경관이 아름답고, 등산인의 선호도가 높아 '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점을 고려하여 선정되었고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절벽과 가을철 단풍이 유명하며, 신라 무열왕 1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자재암이 있다.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고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의상대(587m)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 옛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 하고 자재암이 있는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은 암봉과 바위능선 사이로 골짜기가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청량폭포, 원효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수도권에 있어 가깝고 교통편도 좋고 입구에 넓은 주차장과 눈썰매장, 수영장 등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코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산자락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어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 하여 자재암이라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로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대고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 산행일자 : 2020.10.18(일)

○ 산행장소 : 파주 소요산 559m

○ 산행코스 : 소요산 입구(10:15)→ 먹쟁이골 갈림길(먹쟁이골2.5/하백운대0.3, 10:30, 1.0㎞)→ 하백운대(11:05, 1.5㎞)→ 중백운대 갈림길(덕일봉0.7/상백운대0.3, 11:20, 0.6㎞)→ 덕일봉(11:35, 0.7㎞)→ 상백운대(12:00, 1.0㎞)→ 나한대 갈림길(상백운대0.7/나한대0.6/선녀탕0.8, 12:20, 0.7㎞)→ 나한대(12:35, 0.6㎞)→ 의상대(12:45, 0.3㎞)→ 갈림길(의상대0.75/공주봉0.45, 13:05, 0.75㎞) 공주봉(13:20, 0.45㎞)→ 자연보호헌장(14:05, 1.3㎞)→ 일주문(14:10, 1.0㎞)→ 소요산 입구(14:50, 2.0㎞)
○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트랭글 GPS로 담은 거리 10.8Km, 4.5시간

 

○ 산행사진 올려요

- 탕방안내센터를 들머리로 먹쟁이골 코스로 중백운대에 올라 덕일봉 보고 칼바위 능선으로 산행하여 의상대에 올라 북으로 백운대와 서로 감악산 조망하고 공주봉으로

- 횡단보도 앞으로 소요산 산림욕장과 비석 사이 산행로로 산행을 합니다

- 산행을 15분정도 하니, 아래 화면에 보이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 하백운대, 소요산 백운대 능선의 제일 아래 봉우리로 이 위 중백운대와 상백 운대를 거쳐 의상대, 공주봉으로 이어지는 말굽모양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요산은 일찍이 절묘한 산세,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단풍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알려지고 잇으며, 양사헌, 이율곡, 성혼, 허목 등 당대의 문인, 학자, 시인들이 이 산을 찾으며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이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 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말고 시리다

- 하백운대에서 오르며 우로 보니 좌로 봉우리가 의상대와 우로 의상대가 조망되어요

- 갈림길, 들머리에서 3.1㎞ 산행하여 오니 갈림길로 덕일봉에 올라 조망 보고 되돌아와 소요산으로 갑니다

- 덕일봉, 또는 감투봉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소요산지맥에서 칼바위, 상백운대에서 1.0km 능선을 거쳐 뻗어온 줄기로 이곳에서 신북면 둔덕리의 신북온천과 청산면 초성리의 초송초교 방향으로 갈라진다

- 덕일봉에 이정표로 소요산 정상은 1.0 거리이고 포천 신북과 말턱고개로 갑니다

- 상백운대, 소요산 일주문에서 오르는 왼편 등산로를 백운대라 부르며 이를 다시 위치에 따라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로 나눈다. 산세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단풍과 청량한 하늘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이 어우러져 문자 그대로 작은 금강산이라 부르는 이곳을 상백운대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이후 이곳 소요산 아래 행궁을 짓고 머물며 불교 수해에 힘썼는데 그는 자주 이곳 백운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동시에 자신의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그가 백운대에 올라 지은 詩 등백운봉(登白雲峯)에는 태조의 야망이 내포되어 있다

넝쿨을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놓였네
내 나라 산천이 눈 아래 펼쳐지고
중국땅 강남조차 보일 듯 하이

- 칼바위 능선,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생긴 크고 작은 편마암들의 바위라는 의미로 상백운대에서 시작해 선녀탕 입구까지 약 500m를 연속으로 이어졌고 몸이 긴장하는 구간이다

수려한 소요산의 절경을 한층 더 뽐내주는 칼바위는 그 기세나 산세가 웅장하고 노송과 함께 절경을 이루며 뒤편으로 소요지맥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연결되어 마치 용의 등처럼 동두천의 동북쪽을 휘감고 있다

- 나한대 갈림길, 소요산 정상 의상대에서 동북으로 나한대, 봉우리 능선이 칼바위, 상백운대, 덕일봉까지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 두번째 갈림길로 나한대는 0.6km이고 상백운대는 0.7km이며 칼바위는 150m에 선녀탕 입구까지는 0.8km이다

또한 여기서 동으로 약 6,5km 내려가면 새목고개이고 여기서 봉우리로 오르면 소요지맥인 왕방산이다

- 나한대, 소요산에서 두번째 높은 해발 571m 봉우리로 우측에는 의상대와 공주봉이 위치하고 좌측에는 선녀탕 하산로 칼바위와 상백운대가 위치해 있다

나한이란 의미는 불교를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이르는 명칭으로 신라시대 원효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초에 나옹 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하였던 장소이고 특히 조선 태조가 이 절에 머물며 절의 면모를 일신한 이후 자재암이 크게 번성하자 절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봉우리를 불교와 관련된 명칭으로 부르는 중에 이곳을 나한대라 부르게 한다

- 의상대(義湘臺), 동두천의 명산인 해발 587m의 소요산 주봉으로 마치산을 바라보았을 때 앞으로 동두천 상∘하봉암동이 보이고 그 건너편으로 파주 감악산이 보인다. 뒤편으로는 소요산지맥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마치 용의 등처럼 휘감아져 보인다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일으킨 후 자재암을 둘러싼 소요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불교와 관련된 이름으로 불렸는데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을 기려 소요산의 최고봉을 의상대라 불렀다

- 의상대에서 서로 화면 거운데 끝으로 젤 높은 봉우리가 감악산입니다

- 의상대 이정표. 공주봉으로 가려면 구절터 따라 갑니다

- 산고들빼기

- 샘터길 하산로 갈림길, 여기서 공주봉은 우로 0.45입니다

- 공주봉,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은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첫번째로 만나는 봉우리로 높이 526m이며 공주봉을 지나면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와 만난다. 매월당 김시습 또한 소요산을 자주 거닐었고 그만큼이 산의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에 좋다

공주봉 정상은 마당처럼 넓어 앉아서 쉬기에 좋지만 공주봉은 급경사 암석지역이 많아 지형이 험준하고 미끄러워 추락 및 낙석 위험이 높으니,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는 위험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 아직도 반공호의 흔적이 

- 자재암으로 내려가는 산행로 우로 점망대가 있으니 조망하고 가야지요

- 전망대에서 좌로 봉우리는 상백운대이고 우측 봉우리는 의상대입니다

- 구절터로 보이는데요. 구절터, 요석공주와 원효대사 사이에서 설총이 태어났는데, 이후 원효는 파계승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소요산 원효대에 정착하여 수행에 전념하였다. 요석공주는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 소요산 아래에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고 하는 구절터로 이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고귀한 사랑을 확인해주고 있다

원효대사의 부인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왕의 딸이다. 요석공주는 일찍이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렀다. 이때 원효라는 스님이 노래를 부르며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원효의 노래는 무열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노래를 들은 무열왕은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라며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였다

- 자연보호헌장비. 갈림길로 우로 가면 자재암이고 앞으로 진행하면 일주문입니다

- 원효폭포, 자재암 안에 있는 샘으로 지금도 물이 나와 사람들의 갈증에 촉촉한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한 원효대사는 차의 달인이었다. 신비하게도 원효대사가 자리를 잡은 절터에는 반드시 약수가 나오며, 그것도 찻물로는 으뜸인 석간수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중 1,300여 년 전 수행하였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로 이름나 있다

물맛이 좋아 신라시대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중기까지도 시인과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차 문화의 유적지가 된 원효샘 양 옆에는 천연 암굴인 나한전과 우물처럼 깊이 파인 협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눈길을 끄는 옥류폭포가 있다

- 일주문

- 소요산 주차장 입구

- 트랭글 GPS로 담은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