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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유교문화길, 안동한지공장을 들머리로 하천따라 병산서원 관람후 화산에 올라 낙동강 물줄기 바라보고 내려와 유교문화길 걸어서 하회마을 와가집과 초가집 보고 만송정으로

산이 좋아 ^_^ 2021. 10. 2. 23:00

안동 하회마을 유교문화길.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되고 조선시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고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동쪽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풍수지리적 지형,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 관람일자 : 2021.10.02(토)

○ 관람장소 : 안동 하회마을 유교문화길

○ 관람코스 : 안동한지공장(10:15)→ 풍천배수장(11:03, 3.5㎞)→ 어락정(11;12, 0.5㎞)→ 병산서원(11:36, 2.0㎞)→ 화산(12:10, 2.1㎞)→병산서원(12:40, 2.0㎞)→ 팔각정자(13:22, 2.0㎞)→ 하회마을(13:43, 2.0㎞)→ 셔틀버스 정거장(14:55, 0.5㎞)

○ 관람거리 및 시간 : 트랭글로 담은 GPS거리 16.2㎞, 소요시간 4.7

 

○ 관람사진 올려요

- 신역천 안동한지공장 앞 유교문화길 안내도. 여기서 하천따라 걸어 병산서원 관람후 화산에 올라 낙동강 물줄기 바라보고 내려와 하회마을 와가집과 초가집 보고 만송정으로

- 안동한지, 우리 고유의 멋과 얼 그리고 숨결이 그대로 간직된 한지. 한지는 중국의 화지(華紙)와 일본의 화지(和紙)와는 달리 닥나무 껍질을 주원료로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으며, 손으로 뜨는 수초지(수록지)를 말하며 우리나라에서 제조되는 종이를 말합니다

종이라는 어원은 닥나무 껍질인 저피(楮皮)에 어원을 두고 저피->조비->조해->종이로 변했습니다. 여기에서 종이는 한지의 의미와 가깝습니다

- 화면 좌로 소나무 앞으로 오면 소산마을인데, 횡단보도 건너서 우측으로 오면 풍천배수장 이정표 바라보고 올라갑니다

- 화면 좌로 농지와 우로 하천을 사이에 농로 따라서 약 3.0Km를 걸어가면 풍천배수장이 나옵니다 

- 좌측 뒤로 풍천배수장이 있으며, 여기서 병산서원을 바라보고 진행합니다

- 어락정입니다

- 병산서원 앞에 매점 , 커피숍이 있어요

- 병산서원屛山書院(사적 제260호), 고려말부터 이어져 온 풍산류씨 가문 서당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이 그 전신(前身)이다. 선조 5년(1572년)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년)선생이 31세 때에 후학 양성을 위해 풍산에서 병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당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병에 의해 불태워졌다. 1607년 서애 선생이 타계하자 광해군 6년(1614년)에 선생의 제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공이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림(儒林)과 뜻을 모아 사당(祠堂)인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여 선생을 봉안하면서 병산서원으로 개칭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광해군12년(1620년)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인조9년(1629년)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3년(철종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다. 매년 3월 초정일(丁日)과 9월 초정일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1978년 3월 31일에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 만대루

- 서원 건축물 뒤로 배롱나무 3그루가 있는데, 여름에 오면 꽃이 얼마나 멋질까 기대되는데요

- 병산서원 보고 나와 화산으로 올라 갑니다

- 버섯 이름이 궁금해요.  외꽃버섯이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 화산. 이정표는 더 가야하는데 어플 이정표에는 여기로 뜹니다

- 이젠 되돌아 병산서원 방향으로 내려가 하회마을로 진행합니다  

-  병상서원 도착, 좀 더 내려가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 낙동강 물줄기 옆으로 하천길 따라 좌로 우로 가다가 팔각정자까지 올라서 하회마을로 진행합니다

- 하회마을까지 약 5Km가 넘어요. 이제 절반 왔으니 좀 더 힘내서 가야지요

- 팔각정자 전에 유교문화길 안내 입니다 

- 팔각정자.  에제 오르는 길은 없고 하회마을까지 내려가면 됩니다

- 내려가는 길에 잠시나마 뱀하고 같이 내려갔어요

- 앞에 하회마을이 보이기 시작해요

- 아니 목화인데, 아직도 목화 재배를 하고 있어요

- 하회마을 도착.  이번에는 우측으로 돌아보자

- 원지정사로 가야지

- 원지정사 앞에 400년 이상된 보호수로 소나무가 넘 멋져요

- 원지정사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제85호), 서애 선생이 선조 9년(1576년)에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만송정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 북쪽에 짓고 학문을 했던 곳이며, 원래 원지(遠志)는 한약재로 심기(心氣)를 다스려 정신의 혼탁과 번민을 풀어주는 소초(小草)를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안산이기도 한 원지산(遠志山)에서 자생하는 풀이다

따라서 원지라는 당호와 북향하고 있는 두 건물을 생각하면 북녘에 있는 임금님을 사모하는 선비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 나도 그네타고 갈까

- 한옥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파는 매점이 보여요

- 충효당忠孝堂(보물 제414호),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고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宜河)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 양진당養眞堂(보물 제306호),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양진당(養眞堂)」은 풍산 류(柳)씨의 대종가(大宗家)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현판은 겸암 류운룡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을 지칭한다. 당호인「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다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며,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공존하는 고택이다

- 양진당을 나와 보니, 고택 사이로 담에 감나무에 감이 붉게 물들어 푸른하늘과 넘 어울려요

- 하회탈 매점

- 한옥 담도 황토와 돌로 쌓아 위에 짚, 기와으로 올려 풍경이 넘 좋은데요

- 초가집

- 염행당 고택

- 하회마을 버스시간표

- 부용대,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하고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부용대라 부른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라 불렸고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 암릉 위가 부용대인데 섭다리도 배도 없어 가질 못하고 보기만해요

- 만송정萬松亭(천연기념물 제473호), 2006년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되었고 안동 하회마을(중요민속마을 122호) 북서쪽 강변을 따라 펼쳐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있는 소나무숲이며, 조선 선조 때 서애(西厓) 류성룡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용(1539~1601)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芙蓉臺)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萬松亭)이라 한다. 1983년에 세운 만송정비(萬松亭碑)에는 이 솔숲의 내력과 함께, 현재의 숲이 1906년에 다시 심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숲에는 수령 90~150년 된 소나무 100여 그루와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심는 작은 소나무들이 함께 자란다. 이 소나무들의 크기는 나무높이 16~18m·가슴높이 줄기지름 30~70㎝ 정도이다. 이 숲은 여름에는 홍수 때 수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세찬 북서풍을 막아주며,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 혹은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 셔틀버스 정거장. 셔틀버스 타고 약 5분 정도가면 입구에 내려서 버스타고 집으로  가요 

- 트랭글 GPS로 담은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