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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산이 좋아 ^_^ 2021. 5. 19. 23:30

봉암사,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대사(824~882년, 이름 도헌이고 지는 지선. 지증은 세상을 떠나자 임금이 존경과 애도의 뜻으로 내린 시호이다)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그 사격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신라 제 49대 헌강왕은 화풍으로 소폐하고 혜해로 유고할 유신정치를 뜻하고 이었는데 이런 헌강왕의 개혁 의지에 이념을 제공한 것이 지증대사의 선이었다

 

그후 봉암사는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고려시대에도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불교 중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던 대선찰이다. 그런데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소실된 것을 불기 2,499년(1,955년) 금색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으며 최근의 도량으로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봉암사는 불기 2526년(1982)부터 종립선원으로 희양산 남쪽 너른터에 자리하고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9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서출동류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어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수 있는데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로고 있어 예로 부터 봉암용곡이라 불렀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 관람일자 : 2020.05.19(수)

○ 관람장소 : 희양산(999m) 남으로 아래 봉암사

○ 관람거리 및 시간 : 5㎞ 및  3시간

○ 관람사진 올려요

- 봉암사 입구 우로 넓은 계곡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 봉암사 입구

- 소나무와 참나무가 수령에 치솟음이 좋아 걷기에는 넘좋아요

- 희양산 봉암사  일주문

- 마애미륵여래좌상 앞으로 너럭바위에 흐를는 물이 많고 아래로 고여있는 물이 바닥에 돌이나 모래가 보여 넘 깨끄해,  뛰어 들고 싶을 정도입니다  

- 마애미륵여래좌상, 이 불상은 환적의 찬 선사의 원불인데, 평소에 발원 기도하는 부처님 또는 보살이라고 전해오며 조각 연대는 고려말기로 추정된다. 높이는 4.5m, 폭이 4.4m인데 불두주위를 약간 깊게 파서 감실, 닷집 혹은 집 모양의 장엄물 처럼 만들었으며 광배, 후광을 겸하는 듯하게 처리 하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의 중앙에는 꽃 무늬가 있고,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을 들고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무릎은 넓고 높아 안정감이 있다. 어러한 형태는 고려말기의 양식과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

- 너럭버위가 크고 흐르는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 넘 좋아요

- 미륵볼 보았으니 오솔길 따라 내려가서 봉암사 보아야지

- 봉암사 도량 배치도. 고려시대 정진대사 원오탑은 어디에 있는지 볼 수가 없었읍니다

- 암봉이 희양산 입니다. 아래로 좌에 금색전이 우로 대광보전이 위치합니다

- 불두화. 인동과의 낙엽지는 작은키나무로 불두화는 백당나무의 유성화를 없애버리고 무성화의 꽃잎만 자라게 한 원예품종이며, 공 모양의 커다랗게 핀 꽃이 인상적이다.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하였다

- 대광보전. 희양산 아래 대광보전 넘 멋져요.  하늘에 암봉이 멋지고 아래로는 물이 굽이굽이 흐른다 하여 봉암용곡이라구요  

- 대웅전 앞마당에 한쌍의 노주석(爐柱石), 정료석 또는 순한글로 불우리라고 하는 돌받침은 야간에 행사가 있을 때 관솔불을 피워 그 위에 얹어 마당을 밝히던 곳이다. 이런 불우리를 봉암사처럼 옛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 계단 앞에 사자 4마리가 지키고 있어 금당지는 안전합니다

- 지증대사 적조탑비와 적조탑입니다

- 지증대사 적조탑비, 비문의 정식명칭은 "유당 신라국 고봉암사 교시 지증대사 적조지탑비명(有唐 新羅國 故鳳巖寺 校試 智證大師 寂照之塔碑銘)"이며 비문은 신라시대 대문호인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분황사 혜강스님이 83세에 글을 쓰고 새겼다.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한 부도탑비로 신라 경애왕 원년(서기 924년)에 세운 것으로 귀부와 이수를 완전히 갖추었으며, 귀두는 한개의 뿔을 장식한 용머리 형으로 얽히어 싸우듯 장식한 매우 섬세하고 다양한 이수를 비신 위에 갖추고 있는 높이 2.73m이고 너비 1.64m통일신라 최전성기의 석비다

- 지증대사 적조탑,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부도로 9세기 경에 팔각원 단형을 기본으로 하여 세운 것이다. 여러장의 판석으로 짜여진 방형의 지대석 위에 각 부의 장신 조각이 섬세하고 수려하게 제작되어 당시 신라부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탑의 높이는 3.41m이고 지대석 너비는 2.28m의 당당한 탑이다. 전체적으로 장중하면서 당당한 모습에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숙연해짐을 느낀다

- 봉암사 3층석탑, 통일 신라시대의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와 상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의 비례와 균형이 조화되어 보기드문 아름다움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한국 석탑 중에서 매우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탑의 높이는 6.31m이고 그중 상륜부의 높이는 2.38m이며 지대석의 너비는 3.24m이다. 이탑의 조성시기는 9세기로 추정된다.

정상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3층 석탑의 균형 잡힌 모습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희양봉의 장중하고 힘찬 기상이 휘몰아쳐 내려오다가 삼층석탑에 이르면 마치 영웅의 기개도 단아한 우아함 앞에서는 그 수줍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용트림으로 뻗어오던 기개는 일순 탑 앞에서 주춤하며 부드럽게 순화되어 부드러움과 굳셈의 절묘한 조화로 찹배객의 발길을 묶는다

- 금색전. 고려시대 정진대사가 중창불사 할 때 금색전을 제일 먼저 올렸으며, 스님에게 물으니... 비로나자불을 모시며 부처상 금색이 강해 그렇게 하였다 합니다

- 종각

- 극락전과 산신각.  돌담에 자라는 나무가 구상나무 입니다

- 여기서 부처님이 주시는 음식으로 자장밥에 오이미역 냉채로 점심먹고 왔읍니다

- 봉암사 부도

- 봉암사 입구이며, 나무아래 목조건물이 있는데, 경순왕이 난을 피하여 돌아갈 때 백성과 원님이 환송하던 곳배행정(拜行亭)이라 하는데 봉암사 초입이라 합니다